19세기 후반, 1980년, 그리고 2008년. 여전히 한국은 외신들에게만 이해되고 있다.

프랑스 외신에서 본 현 한국 상황!!


19세기 후반, 대한제국을 관찰하고 쓴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저작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책이 있다.

"빅토리아조 여인들의 불편한 치마 차림으로 그녀는 남정네도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에 감은 머리가 이내 얼음 투성이가 됐으나, 담요를 몸에 똘똘 말더니 이내 곯아 떨어졌던 그녀였다. 뼛속까지 시린 날씨로 거동조차 힘들던 로키 산맥 탐험때다. 당대의 전 근대적 인습에도 불구, 미국을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하와이, 티베트 등지를 오갈 수 있었던 것은 “건강 회복”이라는 이유를 표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 네이버 검색, 한국아이 뉴스 발췌.






이 억척스런 여인의 글은 현재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1학년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조선인들의 양반과 서민의 생김새 차이, 걸음걸이의 차이를 매우 상세하게 쓰기도 하고, 서울의 모습을 스파이가 아닐까 의심스러울만큼 자세한 수치까지 동원하여 길이와 너비며 모양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빨래터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 누구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고 진술한 대목에서는, 동양의 문화를 서양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여인의 눈을 감탄할 수밖에 없다.

"농촌 여성들은 삶의 즐거움이 없다. 이들은 고된 가사를 그들의 며느리에게 물려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라니. 얼마나 날카로운 관찰인가. 물론 교육 현장에서는 한국 문화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편협한 관점이라고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고는 있으나, 봉건주의와 유교이념에 찌든 한국 사회의 남존여비를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어느 한 구석에는 이런 글도 실려 있다.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수탈의 운명을 타고난 이들 계층은 최악의 무관심과 타성, 무기력의 늪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왕을 정점으로 한 봉건의 역사에서, 그들 스스로 '천하의 큰 근본'이라 일컬어졌던 농사 및 모든 '근육노동'을 담당한 계층에 대한 수탈과 착취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며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넷으로 구분한' 탓이었다.

그 자신 왕을 섬기는 나라에서 온 사람의 눈으로,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수탈당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기는 그닥 어렵지 않은 탓이었을까. 스스로가 착취의 편이었든, 피착취의 편이었든 사회구조는 그야말로 '안 봐도 비디오' 였나보다.

애써 부인하려조차 하지 않았던, 아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몰랐던 당대의 지배층이 이 책을 읽었다면 그저 스스로를 '흡혈귀'라 부른 사실 하나말고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겠지.

적어도 '민주'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때 후진국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1980년. 광주에서 독재자에게 계급으로 떠밀리고 이념공세로 눈이 먼 젊은 군인들이 자신들의 아버지, 어머니, 누이, 꼬마 동생들을 총으로 쏘아죽였다. 칼로 찔러죽였고,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피가 튀고 흘러 도시를 물들인 미친 축제에서 피부색 다른 또다른 외국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달렸다.

한 쪽 팔에 꿰어달린 'Press'라는 부적 덕에 그들은 희생양이 되지 않았고, 그 덕에 새까맣게 잊혀질 뻔 했던 역사의 비극은 바다 건너 신문의 흑백사진으로나마 그 피의 흔적을 드러냈다.






또한 당시 광주에서 살고 있던 아놀드 A. 피터슨 목사의 증언을 통해 너무 뻔한 학살자들의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밝힐 수 있는 증거'를 얻을 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80년 광주 증언록 요약

*저자 : 아놀드 A. 피터슨

*출판사명 : 풀빛

*발행연도 : 1995년 05월 31일

 

<미선교사 피터슨의 광주항쟁 현장기록>


...

몇몇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큰 도로로 나가 시위를 하려다가 전경이나 군인들에게 쫓기는 모습이 보였다. 군인들은 전경과 매우 달랐다. 이들은 시위에 참여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대해 터무니 없는 잔혹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날 이후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바에 의하면 광주 민주화운동은 시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군인들이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향해 잔혹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5시 30분쯤 우리는 관광호텔 근처에서 20대 청년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말끔한 평상복 차림이었는데 공수부대원들이 그를 둘러싸고선 조사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멈춰서서 지켜보았다. 공수부대원들은 대검을 꽂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젊은 사람의 갈비뼈, 등, 어깨를 곤봉으로 치기 시작하더니 무릎을 꿇도록 했다.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므로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는 시위에 참가했다는 어떤 물증도 없었으며 대학생으로 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계속 그를 때리다가 대검을 불쑥 갖다 댔다. 대검은 그의 목에서 불과 몇 센티 앞에서 멈췄다. 그후 거리에서 이 비슷한 광경을 세 번이나 목격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많은 학생들이 이날 오후에 공수부대원들에게 맞거나 찔려 죽었다고 했다......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5월18일 이전까지 학생시위는 평화적이었다. 전경은 교통 통제만 했다. 공수부대원들이 18일 광주에 나타나기 전에는 광주에 어떤 무력투쟁이나 격렬한 시위도 없었다. 둘째 전경과 공수부대원들의 행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는 광주의 경찰이나 전경들이 부적절한 행동을·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공수부대원들은 19일에서 20일 사이 광주에서 철수했다. 대신 20사단이 들어왔다. 이 사단은 5월 16일 미군 지휘하의 한미연합사에서 탈퇴했다. 연합사에서 이 병력이 탈퇴한 것이 광주 민주화운동 발생 이틀 전이며 계엄령 확대 하루 전의 일이라는 사실은, 한국군 수뇌부가 강력한 군사지원을 필요로 하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나는 광주에서 사건을 유발한 것은 그들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계획했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빌미로 그 사건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88년 8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회 조사때 나온 보고서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기록돼 있다. 「군은 5월 21일 오후 1시 30분에 처음으로 시위자들을 향해 발포했다. 계엄군들은 무장한 시위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면서 달려오자 공포탄으로 발포했다. 계엄군 지휘관은 그날 오후 7시 30분에 군대가 중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내가 경험한 진상과는 아주 다르다. 발포는 5월 21일이 아니라 5월 20일 오후부터 빈번하게 일어났다. 나는 5월 21일 아침 도청에서 두 구역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나는 총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시민대원들은 5월 21일 오후 1시 30분 경에는 총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았다......



TV와 라디오는 저녁 뉴스에서 잘못된 보도를 했다. 군인들이 유혈 대결을 피하기 위해 21일 밤 도청지역에서 철수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미 유혈 대결이 있었다. 기독병원은 시체 13구를, 전남대 병원은 시체 27구를 안치하고 있었다. 적십자병원이나 조선대병원에서 보고를 들은 것이 없으나 다 합친다면 최소한 80∼100명의 사람들이 21일 죽은 것이다......



미국 CBS 방송기자가 오전 9시 30분쯤 와서 직접 녹화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이번 사건을 조장한 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군인들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나는 인터뷰가 22시간 후 미국 CBS 저녁뉴스 시간에 방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녹화테이프가 인편으로 서울로 보내져 동경까지 전달되고, 동경에서 위성으로 미국에 보내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공군기지에 있는 데이브 힐과 연락을 취했다. 데이브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떠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지만 밝힐 수 없는 어떤 사실에 대해 불길한 어조로 말했다. 후에 나는 그로부터 한국 공군이 광주에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군측은 분명 한국군이 그 계획을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했던 것 같다. 나는 도청 근처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온 기자도 만났다. 그는 광주에 숨어 들어올 수는 있었지만 카메라를 가져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필름은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카메라를 빌려줬다.......






............ 이 글을 읽은 '한나라당과 그 추종자인 친미 세력'들이 이 미국인을 '빨갱이'로 밀어부칠지 아닐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나라 사람인 이창성씨가 찍은 사진. 실제 우리 나라 사람이 찍은 사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광주를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 광주의 꼬마.

조천호 씨는 어느새 이렇게 자라서 지난 2006년 결혼까지 했다.

물론 오른쪽 사진"은" 국내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2008년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그새 여러 번의 대통령을 치러냈고, 허약하긴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경제의 덩치는 커졌으며,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냈고,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졌으며, 가스로 가득한 지하철 속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잃었다.

미군의 탱크 밑에서 두 명의 여중생을 잃고 시작된 촛불시위는, 이제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가장 대중적으로 밝히는 훌륭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촛불 시위를 통해서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내려 한다. 나를 포함해서.

그리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예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신문이 특정 정파나 세력을 지지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에 대한 논의는 전혀 필요가 없다.

내가 따지고 싶은 것은, 신문이라면 '사실'은 보도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서 100년이 더 지난 오늘, 여전히 프랑스 리옹 지방의 작은 지역 정보지가 대한민국 청계천 광장의 촛불을

더 정확히 보도하고 있다면, 대체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다는 것이냐.

100년 전 그 때, 1980년 그 때에 비해서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지.








La rapidité et les conditions peu avantageuses pour les sud-coréens avec lesquelles cet accord a été négocié et signé laissent penser qu’elles avaient été fixées avant même l’élection du président et qu’il constitue un cadeau à l’administration américaine.

 

한국인에게 유리하지 않은 이 계약의 속도와 조건은 계약 자체가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협상 중이었고 인준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고, 미국 정부에 대한 선물로서 준비되었다는 의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




Certains comme le gouvernement Coréen ou Étasunien usent d’arguments idéologiques (les gouvernements servent l’intérêt des populations) et scientifiques (extrapolation du risque) pour justifier leur business. Ils arguent que l’épizootie a été globalement jugulée, que le nombre de cas humains (environ 214 cas) indique un risque réduit et acceptable, et que les contrôles sont dorénavant efficients.

 

한국이나 미국 정부는 이상적 담론(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있다)이나 과학적 근거(위험에는 근거가 없다)를 들어 그들의 비지니스를 정당화한다. 그들은 위협이 전세계적으로 과장되었다고 말하며, 인간에 발생한 숫자(214건)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수용 가능한 조건이고, 검역이 확실할 것이라고 말한다.


....



Le 29 avril puis le 8 Mai 2008 ces arguments volèrent en éclats dans des émissions diffusées sur la chaîne publique coréenne MBC [2] . Un reportage à charge ainsi qu’un débat entre des membres du gouvernement et de la société civile révélèrent la méconnaissance effarante par les responsables des termes de l’accord et des risques sanitaires encourus par la population.

 

2008년 4월 29일과 5월 8일 이러한 담론은 공영방송국 MBC에서 방영된 방송 내용으로 그 괴리를 보였다. 정부 요인들과 사회 구성원들의 대답은 계약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무지를 철저히 보여주었다.

 

Le débat montrera des négociations bâclées, une absence de contrepartie de la part des états-unis et l’incapacité du gouvernement coréen de contrôler la qualité du bœuf importé, que ce soit l’âge réel des animaux ou la présence d’ESB. Il révéla de plus que les accords prévoient l’importation de bovins âgés de plus de 30 mois qui présentent un risque très élevé, et sont normalement destinés aux pays pauvres et non à la consommation sur le territoire des États-Unis.

 

대담은 서두른 협상, 미국 측에 있어서 반대 여론의 부재, 수입되는 쇠고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검역 불가능성 (즉 소의 실제 연령이나 광우병 요소 인지 가능성)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또한 미국 내에서는 소비되지 않고 가난한 나라에 수출되는, 광우병 위험이 급격히 증대되는 30개월 이상의 소가 수입되는 것을 사실상 허용하는 골자의 계약을 보여주었다.

...


De plus l’émission fit l’étalage d’une mauvaise interprétation d’une annonce de l’administration américaine en Anglais par les membres du gouvernement pensant que les farines animales ne devaient pas contenir de matières à risques spécifiés (yeux, moelles épinières, intestins, cerveaux..), alors que la signification en était l’exact opposé, comme le reconnaîtra quelques jours plus tard le gouvernement Coréen décrédibilisé.

 

게다가, 방송은 미국 정부의 영어 방송을 정부 임원이 잘못 이해하고 방영했다는 점을 보여주어 그 위험도를 보여주었다. 이는 소 사료에 위험을 유발하는 특정 부위 (눈, 등뼈, 창자, 뇌,...)를 섞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의미는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이미 신뢰도가 꺾여진 한국 정부는 이를 며칠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


Durant cette émission, la ligne de défense des membres du gouvernement tiendra essentiellement dans la maîtrise scientifique du risque par des critères internationaux. Outre l’élaboration douteuse et sujette aux intérêts américains de ces critères, l’invocation de la caution scientifique était particulièrement surprenante, surtout après que le gouvernement ait rejeté l’avis défavorable des experts. De plus on peut se demander comment ces derniers pourraient construire un modèle théorique du risque alors qu’ils n’ont aucune idée précise du fonctionnement de la maladie, et que la durée particulièrement longue de l’incubation ne permet pas encore de tirer des conclusions sur l’ampleur de la contamination humaine.

 

이 방송에서, 정부측 대변인은 오로지 국제 기준에 의거하여 과학적 검역에 대한 주장만을 펼쳤다. 이 기준에 대한 미국측의 발빠른 협상과 수상쩍은 이권은 제쳐두고, 이러한 과학적 검역에 대한 주장은 전문가의 부정적 견해가 무시된 채 목소리만 높아졌던 것이다. 한편 이 발언자가 어떻게 질병에 대한 전문적 이해도 없이 이론적 모델을 구상할 수 있었는지, 긴 잠복 기간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감염에 대해 그렇게 빠른 결론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


Devant l’indignation grandissante au sein de la population, le gouvernement coréen commettra d’autres faux pas. Parmi les déclarations prêtant à rire, on peut citer celles du chef des inspections : "Manger un T-bone de steak contaminé par l’ESB ne comporte aucun risque" ou encore "La viande de bovin atteinte par l’ESB est sécurisée, crue ou cuite".

 

대중 사이에 점점 확산되는 불신에 한국 정부는 또 다른 해서는 안될 일을 하였다. 농담이라고 믿고 싶은 선언 중에서, 우리는 검역 장관의 이런 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광우병에 감염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어도 위협은 없다" 혹은 "광우병에 감염된 소는 날것이나 익혀도 위험하지 않다"



.....


Le gouvernement est allé jusqu’à utiliser des publicités dans des journaux de droite pour déclarer que "les américains mangent le même bœuf que nous" ou que "Depuis dix ans, il n’y a pas eu de cas de vache folle dans les exportations américaines". Ces deux affirmations mensongères provoquèrent les réactions ironiques de personnes s’interrogeant sur l’utilisation des taxes payées par les coréens pour faire de la publicité au bœuf américain.

 

정부는 급기야 우익 신문에 "미국인은 우리와 같은 고기를 먹습니다"나 "10년간 미국산 수입 소에서는 광우병 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와 같은 광고까지 내기 시작했다. 이미 거짓말로 증명된 이 두 문장은 미국소에 대한 광고를 한국민에게서 걷은 세금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묻는 풍자적인 결과만을 불러왔을 뿐이다.








by 작고슬픈나무 | 2008/05/28 23:16 | 뉴스 서핑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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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OSH at 2008/05/28 23:25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심지어는 거짓말을 하고....

국민들이 스스로 알리고 발버둥치고 있노라면...
그걸 가지고 낭설이니 유언비어니 하고 ...

지금 국민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투쟁하고 있는데,
대체 정치인들은 거기에 관심이나 가지고 있는지,
정말 언론은 이걸 보도할 의지나 있는지...

어제처럼 또 기자 빼내고 봉쇄 들어갔다는 소리 듣고 착잡해지는 중입니다.

Commented by 작고슬픈나무 at 2008/05/28 23:49
JOSH 님 // 지금인 대체 몇년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공이 뒤틀리는 대한민국입니다.
Commented by 소갈비맛나 at 2008/05/29 18:55
근데 문제는, 일부에서 '순수함'에만 너무 집착한다는 거. 촛불 집회만 백날 연다고 실제로 바뀌는 게 있겠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해야지. 4.19, 5.18, 87년 6월항쟁의 교훈이 대체 뭐냔 말이다. 답답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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