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산을 걷다.


집 근처에 불암산 등산로가 있다는 걸 알고, 언제 한 번 올라야지 올라야지 마음만 먹은 게 벌써 몇 달 전.

과감하게!! 3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싶은 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출발한 시간이 오후 4시 20분경. 길어진 해라지만, 어느새 따가운 기운이 가신 오후 햇발과 함께 등산로를 향해 걸었습니다.

카메라 가방을 들고, 마실 것과 오이라도 챙겨갈까 했는데. 까짓거 3시간인데 뭘 그리 주렁주렁이야. 그냥 가자! 싶어서

달랑 400D 하나만 들고 나선 길입니다.






산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큰 차로변에 피어있는 철쭉과 야생화입니다.

봄입니다. 그렇죠? 온통 꽃 천지입니다.



특히나 이 꽃이 예쁘더군요. 덕지덕지 무리지어 피어있는 게 서로 봄햇살 쬐겠다고 아우성치는 꼬맹이들같습니다.

한 그루도 아니고 줄지어 재잘거리고 있더군요.







이 위태로워보일 지경으로 미끈한 녀석들까지.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꽃입니다. 이름이 뭘까요? 봄꼬맹이꽃?


등산로에 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마자 꽃나무들입니다.





여전히 꼬맹이꽃들입니다.

그 밑으론 내려오시는 길인지 50대 안팎으로 보이시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분주합니다.

1분에 세 번 정도 마주치는 셈이니 꽤 많은 거겠죠?

아주머니들은 모두 붉은 색, 분홍 색 화려한 옷차림들이시고, 아저씨들은 대개 검은 색이나 쥐색으로 입으셨습니다.

산에서는 화려한 색이 좋다던데요.

그래도 제가 화려한 옷차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수수한 차림새도 좋아보입니다.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더니, 어느새 흙길로 변합니다. 여전히 꽃은 지천입니다.





개나리의 노란 색은 정말 순수한 노란색입니다. 오로지 노랗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노랗기만 합니다.

우리말에서 '개-'란 접두어는 좋은 뜻이 아닙니다. 평균보다 못나거나 비속어에 많이 쓰이는데, 개나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들 백합이라고 부르시는, 나리꽃 중에서 산에 피는 조그만 나리라 하여 개나리가 되었다지요.

왠만하면 이름을 고치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이 꽃에 어울리는 이름이 또 뭐가 있을까요.

개나리의 앞에 붙은 '개-'라는 접두어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노란 색입니다.




중간에 지도가 있습니다. 사진 우측 하단의 노란 길로 제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데크 계단이라는 데를 지나서, 계속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출입 금지라는 문구와 살벌한 철조망 너머로도 여전히 개나리는 노랗습니다.



가지가 휘어지리만큼 많은 꽃을 달고 있습니다.

휘어져 땅에 떨어질까봐 놀라면서도 깔깔대는 꽃들입니다.






오후 5시의 햇살을 받고 있는 잎들입니다.

위엣놈은, 곱게 치마를 늘어뜨린 꼬맹이 색시같고, 아랫놈은 온 얼굴로 웃고 있는 푸근한 뚱땡이 아저씨 얼굴같습니다.




정상까지야 힘들지 모르지만, 조망명소라니 안 갈 수 없습니다. 발걸음을 재우칩니다.







해가 어지간히 기울었나봅니다.




맨발로 걸으라니, 딱 맘에 드는 길입니다.

그런데, 벗은 신발을 어디 맡겨둘 수도 없고. 들고 걷자니 엄두가 안 나고. 여기까지 맨발로 올라온 게 아니라면 이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살짝 약이 오릅니다. 이어진 길이 정말 맨발로 걸을 수는 있는 길인지 볼까요?










음. 정말 괜찮습니다. 딱딱하긴 하지만, 가는 모래가 깔려있어서 정말 맨발로 걷고 싶은 길입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실제로 이 길을 오가면서 만난 분들 중 맨발로 걸으시는 분은 없더군요.

자, 꽃들과 나무들 사이를 또 걷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좀 없앨 수 없나요? 한창 들떠있던 기분이 확 가라앉는 흉물스런 것들입니다.

군부대가 근처에 있긴 있는 데다가, 사격장도 있으니 통제의 필요성은 동의합니다.

사실, 높이 올라가니 총소리가 들려와서 불쾌해졌습니다.

만든 목적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인 물건 따위, 없어지면 안될까요.



낡은 철조망, 겹쳐서 또 만든 철조망, 그 철조망들이 행여 느슨해질까봐 또 묶어놓은 철사. 뻘겋게 녹이 슨.

언제나 안 보게 되나요, 이런 것들.




1.9km 올라왔습니다. 산길이긴 합니다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산책로에 가까워서 경사도 심하지 않거든요.

땀도 기분 좋게 배어날 정도이고, 워낙 바람이 시원해서 금방 금방 식네요. 내친 김에 정상을 향해 더 가보기로 합니다.

아직 계단도 안 나왔으니.



오. 이게 불암산의 유래군요.

유명한 '산들의 모임' 전설이군요. 이 전설에서 제가 늘 궁금해 하는 건, 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입니다.

돌아가서, 얘들아. 나 왔어. 하면 안 되는 거죠. 왜?

민망해서? 쑥스러워서?

마치 6, 70년대 성공해서 돌아오겠노라고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가지도 못하고 삭막한 도시 변두리에서 간신히 숨만 쉬는

그 젊은이들과 같지 않습니까. 전라도 말로 참 '짠~허네요잉'.



데크계단이 여기인 모양입니다. 꽤 길고 또 튼튼하게 돼있더군요. 계단에 띄엄띠엄 한자성어와 설명까지 붙여두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멀리, 바위로만 된 암벽과 그 너머 중계동이 보입니다. 날이 흐려서 사진으론 안 보이네요.

제 눈으로도 잘 안 보였습니다.

날이 흐려서만은 아니겠지요.

그나마 올해는 황사가 덜하니 이렇게 봄에 외출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멀리 볼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아우성치는 꽃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 말이죠.







이제 2.7km를 왔습니다. 더 갈 수는 있는데 이쯤에서 길을 틀기로 합니다.

다음 번엔 카메라도 없이, 빈 손으로 와서 정상까지 가봐야겠습니다.




그늘에서도,



햇빛이 반만 드는 곳에서도,





환한 햇빛 속에서도 꽃들은 피어있습니다.



와~~ 소리 치면 금방이라도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를 새떼같이 앉아있는 꽃들입니다.



내려가는 길에 발견한, 왠지 처연한 꽃.

오늘 본 중 가장 제 마음에 드는 꽃입니다.



어라? 호수가 나옵니다. 여기에 호수가 있다니? 다 내려온 듯 한데, 호수는 정말 의외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잘 가꾸어진 호수네요. 꽃나무들이 옹기 종기 만남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비단잉어까지? 꽤나 큰 호수인데 물고기까지 풀어 기른다면, 이건 아마 삼육대에서 관리하는 호수인가 봅니다.

어느새 삼육대 안에 들어왔나 보네요. 이 녀석들,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꽤나 한가하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도시락 싸들고 꼭 소풍이라도 오고 싶은 곳입니다.

좋은데요. 삼육대 학생들 좋겠네요. 이런 데서 데이트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니, 호수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흠.. 한적해서 더 맘에 들긴 하는데, 왜 이런 곳에 사람이 없을까요?

삼육대 학생들은 더 좋은 데가 있나 보네요.





아, 호수 이름도 있군요. 역시 삼육대에서 만든 곳입니다.

조금 내려오니 삼육대 교정입니다.



내려가다 만난 까치군. 가까이 가도 얌전히 있어줘서 고마웠어.



화왕, 목련입니다. 교정에 가득 피어있더군요. 모교 교정의 아카시아가 생각이 났습니다.



오후 6시의 목련과, 낮에 나온 반달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길 가득 피어있던 벚꽃.

삼육대를 나서서 집까지 걷는 데 15분 정도 소요되었을 겁니다. 태릉 국제 스케이트장, 태릉 국가대표 훈련소, 서울여대 등을 지나서 집에 왔습니다.

6시 40분입니다.

두 시간 20분 정도. 신나게 걸었습니다.

봄 나들이. 꽃과 나무 사이에서 한가로운 4월의 오후였습니다.

혼자여서 약간 아쉽네요. 짝지랑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by 작고슬픈나무 | 2008/04/14 23:18 | 사진과 함께 멈춘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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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소갈비맛나 at 2008/04/15 19:15
가끔 산이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가 주는 게 예의지. 우리나라의 산과 꽃에는 투박하고 강인한 아름다움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우리 민족의 기상처럼.
Commented by 작고슬픈나무 at 2008/04/16 03:03
산에 자주 다니면 좋겠다. 배울 것도 생각할 것도 많을 텐데. 그런데 또 그게 맘처럼은 안 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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