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4 18:30

삼가 대한민국 서정 가요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


고 이영훈씨의 명복을 빕니다.

이문세의 입을 빌려 세상을 따뜻하게 했던 그의 선율과 노랫말들이 이제 다시는 새로 만들어질 수 없다니...

소녀, 휘파람, 사랑이 지나가면, 난 아직 모르잖아요, 붉은 노을........

내 10대와 20대를 채워주었던 그의 노래들에 진 빚을 이제 어떻게 갚아야 할 지.

한 곡 한 곡 떠올릴수록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른다...



왜들

다 가나................................



옛사랑을 처음 듣던 그 때. 하루, 아니 그 후로 몇 달간 그 노래 한 곡에 빠져 살았다.

너무 좋았다.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안 났다. 너무 너무 좋았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았고, 들어도 들어도 슬펐다.

부디.. 좋은 곳에..



'80년대를 넘어오면서 그가 대중 음악에 끼친 공로는 역시 이문세로 대표되는 '80년대 식 발라드'를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곡'을 위해 나머지가 들러리가 되는 앨범 작업 풍토를 개선한 점,
이범희 이후로 희미해져가던 작곡가의 힘을 다시 인식시킨 것 역시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지운(trajanus1126@naver.com)님의 글에서 발췌











"이 노래를 만들고 한동안 노랫말을 쓸 수 없었다. 이보다 나은 노랫말을 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 어느 라디오 인터뷰, 이영훈









사랑이 지나가면’은 이영훈을 평생 작곡가의 길로 이끈 곡이다.
이영훈은 70년대 국제가요제 그랑프리를 휩쓴 이봉조-정훈희 콤비를 따라 ‘이별이야기’ ‘붉은 노을’ ‘그대 나를 보면’을 가요제용으로 습작했다.
그러나 정작 이영훈이 활동할 때가 되자 국제가요제가 폐지돼 이 노래들은 가요제 대신 이문세의 음반으로 빛을 봤다.
이번 음반에선 정훈희가 ‘사랑이 지나가면’을 불렀으니, 20여년 만에 이영훈이 흠모하던 가수에게 노래가 돌아간 셈이다.

- 경향신문, 백승찬


요즘 맥심이라는 커피회사의 광고를 보면 제 소품집중에 있는 연주곡중에
'사랑이 지나가면' 오케스트라곡이 주제음악으로 나오지요?  어떠세요^^
난 참 좋은거 같은데...하긴 내가 만든거니 좋은거야 당연하겠지만.
촬영도 참 잘한것 같고 음악도 알맞게 넣은것 같아서...

1993년 겨울에 이곡을 모스크바에서 녹음하고서 거진 10년동안 발매도
제대로 한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자주 TV에 음악이 나오니 감회가 새롭데요..

한 1년간 방영할 예정이라더군요. 재미있는게요...제게 연락이 잘안되서
오디오PD분이 우리 홈페이지를 통해서 제게 연락을 하셨었드라고요.

제 욕심 같아서는 어디 눈이 펑펑 오는 고장에 가서 '슬픈사랑의 노래'를
배경으로 멋진 영화를 한번 더 찍었으면...하는...민용이 형이 싫다할라나?
어쨓든 제가 커피도 많이 마시거니와...

여러분들도 광고 보시면서 어떤가 유심히 한번 봐주세요.
내일은 영하9도 라네....건강들 조심하세요~~!
                                                             2002겨울   이영훈

- 홈페이지 발췌













이영훈씨를 만난 지 10년이 된다.
그는 혼자 곡을 쓰고 있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고, 나는 세번째 앨범을 준비하는 별로 성공하지 못한 가수였다.
그가 쓴 <소녀>를 연습실에서 듣고 그만 반했다. 그건 기존의 가요도 팝도 아닌,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 음악이 대중적이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
런데 거기엔 전율할 만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조르주 무스타키의 발라드 샹송이나 레오나드 코헨의 팝 발라드처럼 노랫말이 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우리 둘이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하자, 적당한 장르는 발라드다, 그렇게 결론을 냈다.
내게는 3집, 이영훈씨에게는 데뷔 작이 되는 85년의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1년의 공동작업을 거쳐나온 것이었다.

(한겨레, 이문세 인터뷰 1995년. 출처:이문세의 마굿간)














‘슬픈 사랑의 노래’는 이영훈 스스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고 내 생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이라고 여기는 노래다.
86년 시작해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고, 96년에야 가사를 붙였다.
이영훈은 “곡의 모티브가 아름다운 반면 그 성격이 단순하고 강해 후렴부를 만들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백승찬







“제가 작곡가로서는 독선적인 스타일이에요.
그때 스물네살이었는데, 한 2, 3년 같이 하니까 코치하고 운동선수처럼 편해졌어요.
다른 가수 연습시키는 게 귀찮기도 했구요.”
이씨는 “그렇다고 이문세씨가 부른 노래에 다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며 웃었다.
“편안하게 가사를 말하듯이 옮겨주는 부분과 파워풀한 가창력은 만족했지만, 정서적인 표현 부분은 불만족스러웠어요.
특히 〈붉은 노을〉처럼 빠른 곡에서 제 리듬을 못 타고 응원가처럼 부르는 것은 불만이었죠.”

한겨레 인터뷰, 이영훈










내맘속에 살아 있는 광화문의 거리들.
그것은 70년대의 초반 ...정확히 말하자면 1973년부터가 시작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국제극장이란곳이 있었고 아치가 있었던 시절...그곳의 길이 왕복
사차선이었다면 지금들 믿을까?  우이동이 집이었던 나는 늘 그곳을 거쳐 걸어 다녔
었고  예원학교가 있던 시절이다.  

그리고도 80년대의 초반을 그리 했었고...

덕수궁돌담길은 아마 한...몇번이나 왔다 갔다 했을꼬?....
그리도 자주 들르던 덕수궁은 결혼한 후로 한번도 가보질 않고 있는데.
언젠가 10년이 지난후 들러 보리라 생각도 했었건만  그리 안하고 말았다.
그게 1994년 이었고...그해봄에 그리 생각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도 눈이 많이 오던 옛날엔 함박눈이 펑펑 날리면...보기가 좋았었다.
그곳에 서서 바라다 보던 하얀눈...
언젠가 글로 써 옮겨 보려 맘먹고 있는데...아직은 그럴 맘은 아니다.

예전 보다 훨씬 정리가 잘되어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보니 옛생각이 나서 써본다.

- 홈페이지 발췌































옛 사랑



참 오랜만에 글을 쓴다.

잘들 지내지?  

가끔씩 들어와 한참씩 있다 가곤 하지만 글을 쓸게 없어서 말이야.

그런데 내가 4월 이후로 몸이 많이 아펐는데...



만 일년만에 시드니 집에 가서 몇일 쉬고

어제 서울에 왔어. 모든게 꿈만 같아. 사는게.


그리고도 앞으로 치료를 더 받아야해.

많이들 궁금해 하고 걱정하는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거야. 하고 싶지 않은말.


어쨌거나 이번 앨범의 첫번째 판은  예전 같이 감수를 세세히 못했지만

사람들이 들어보고 정성과 노력은 이해하는것 같아.

두번째 앨범에선 이번에 못 보여준 아쉬웠던 부분을 다 보여주려고 .

신곡도 포함해서.


사실 그동안 내가 찍어논 하늘 사진도 앨범에 넣으려 했는데. 몸이 아프니

있는 자료도 못쓰고. 글 한줄 넣는것도 힘들더라.


그 동안 못한일  열심히 하려고.

뮤지컬 완성하고,

CCM  Festival.

옛사랑 두번째 앨범 녹음

등등




모두들 내 생각나면 기도해주길 바래.

이번 앨범은 내 음악의 일부이고 시작이야.

음악산.


Music Mountain.



잘들 지내.  사랑하고.  사랑하고.


(2007-12-07 17:05) - 홈페이지

덧글

  • 소갈비맛나 2008/02/15 01:57 # 답글

    이영훈 씨 돌아가셨어? 안타깝구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나이 또래는 다 그렇겠지만, 이영훈 씨가 만들고 이문세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를 맞이했었지.

    광화문, 종로, 덕수궁 돌담길.... 나도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
  • 작고슬픈나무 2008/02/15 04:06 # 답글

    그렇지. 그냥 따뜻한 노래들이고, 그냥 먹먹한 노래들이었는데.

    다시 옛사랑같은 노래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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